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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임서(臨書), 초보자가 범하기 쉬운 탁본법첩의 함정

고목의향기 2010. 2. 19. 14:01

임서(臨書), 초보자가 범하기 쉬운 탁본법첩의 함정

 

서예를 배우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스승이 써 주는 체본을 교본삼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옛 석비를 탁본한 법첩을 가지고 배우는 것이다.

 

초보 시절에는 주로 스승의 체본을 통하여 배우지만,

결국에는 탁본법첩(拓本法帖)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마련이다.

탁본법첩을 보면서 그대로 쓰기공부를 하는 것을 임서(臨書)라 한다.

 

탁본법첩은 주로 중국의 고비(古碑)를 탁본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간한 탁본법첩은 주로 일본과 중국의 것을 원본으로 삼아 만든 것들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국내 본 탁본법첩은 일본의 것을 베낀 것이었는데,

오래된 고비가 손상을 입은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글씨들이 깨어져 있거나

알아보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하기에 탁본의 판독능력이 약한 초보자로서는

탁본만으로 글씨를 배운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때문에 초보자를 위하여 손상을 입은 글씨들을 새로 다듬고 확대해서

임서할 수 있도록 만든 책들이 나와 있어서 다행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번 손을 본 글자는 엄격한 의미에서

원형과는 상당한 거리를 가진 글자일 수 있다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수백 년, 수천 년 전 처음 비를 세울 때,

돌에 새기는 과정에서 석공이 아무리 정교하게 새긴다하더라도

원본 글씨가 온전하게 재현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그 비들은 오랜 세월 풍우에 마모되고 전화(戰火)에 시달리며 훼손되어져 갔을 것이다.

 

또 진나라 시황같은 폭군은 비석을 세우지 못하게 함으로서

세웠던 비석들마져 땅 속으로 묻어버리게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땅 속 깊숙히 뭍혀있던 비들이 수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꺼내어져 마모된 모습으로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된 것들도 허다하다한다.

 

이러한 역사를 겪은 고비들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이 지난 뒤

후세 사람들에 의해  탁본이 될 때,

그 글씨들은 원본과는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었을까?

글자가 깨어진 탁본을 두고 원형을 살려내기 위해 또 수정을 가한다는 것은,

다시 한 번 또 그만한 변형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쉽사리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략이 어림짐작으로 탁본을 보고 임서를 하다가는 서법에 벗어난 공부를 하게 되는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가급적 원전에 가까운 것을 택하기 위하여

일본 사람들이 중국현지에서 직접 탁본하여 발행한 법첩사본을 구입했다.

아직은 초보인 내가 비문의 글씨가 깨어진 것을 그대로 탁본한 법첩을 보면서

글씨를 공부한다는 것이 힘들어 국내 본을 구입 함께 대조해 가면서 보고 있다.

 

가끔 게으른 마음도 생기고,

이만하면 그대로 원전을 보고 써도 되지 않겠는가하는 자만심도 생겨

일본의 탁본법첩 만으로 글을 써 내려 가다보면

무언가 잘못 길을 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다시 일본판과 국내판을 꺼내 비교 음미하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찾아내고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결국 게으른 마음이 얼마나 큰 함정으로 나를 이끌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임서란 말이 그리 쉬운 단어가 아니다.

옛 것을 통하여 서법을 배우고 그 법을 바탕으로 창작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서예다.

근현대 중국 서화계(書畵界)를 대표하는 오창석(吳昌碩 1844~1927)은

중국 주(周)나라 때의 석고문(石鼓文) 하나를 60년 동안 임서한 후에

자기 나름대로의 전서체(篆書體)를 찾아냈다고 한다.

 

육예(六藝),

과거의 선비들이 최고의 가치로 바라보았던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하나였던 서(書).

육예의 하나, 서(書)를 공부하는 방편으로서의 임서(臨書).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 삶에 자리할까? (20100101 和圓)

출처 : 대자유인
글쓴이 : 대자유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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