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3. 먹색을 조절하는 법
3. 먹색을 조절하는 법
출처:김춘강갤러리
수묵화에서 붓으로 선을 긋는 방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먹의 농담을 내는 것이다. 선을 긋는 연습이 어느 정도 되면 붓에 먹을 묻혀 선을 긋는 것과는 정 반대로 측필을 사용하여 붓봉에 여러 가지의 먹색이 나오도록 연습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짙은 먹은 앞을 나타내고 흐린 먹은 뒤를 암시한다. 먹은 단순한 검정색이 아니라 물과 섞어 쓰면 화려한 색깔 못지 않게 그 오묘하고 깊은 맛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먹은 재료가 자연식물, 온갖 색을 태워서 만드는 만큼 먹 속에는 모든 색을 함축하고 있다.
먹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색이 다르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먹색은 중간, 흐린 먹이 투명하고 깊은 느낌을 준다. 예로부터 먹을 다루는 방법에는 점을 찍어 표현하는 점법과 종이나 천에 물들이는 선염법, 주름을 나타내는 준법, 붓으로 문지르는 찰법이 있고 그밖에 발묵법, 파묵법, 적묵법이 있다.
먹색은 여섯 가지 색을 함축하고 있는데, 흑, 백, 건, 습, 농, 담이다. 흑, 백은 그림이 그려진 모든 먹색과 사물의 크기를 그려지지 않은, 즉 여백을 말하며, 건, 습은 먹물이 번진 데와 메마른 느낌을 말하고, 농, 담은 먹색의 짙고 흐림을 말한다.
이 여섯 가지는 수묵화를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요령이고 방법이지만 좋은 그림 속에는 반드시 여섯 가지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이 여섯 가지 색은 서양화의 삼원색과는 차원이 다르며 수묵화의 조형원리인 동시에 철학이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예로부터 먹을 황금처럼 아껴 쓰라는 말이 전하듯이 수묵화를 그리는 데 지나치게 짙은 먹을 쓰는 것보다는 중간 정도 흐린 먹을 많이 쓰고, 결정적인 곳에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먹색은 담묵에 생명이 있는 만큼 좋은 먹으로 짙게 갈아 맑은 물을 섞어야 깊고 윤기가 나는 먹색을 얻을 수 있다.
수묵화에서 먹의 농담 사용은 서양화의 기법이 흐리게 시작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짙은 먹으로 시작하여 흐리게 끝을 맺는다.
먹은 물과 종이의 흡수력을 이용하는 "일획", 즉 한번 그은 것은 처음이자 그림의 완성인 만큼 단숨에 그려야 생기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적묵법이나 선염법의 예외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붓에 먹을 묻히는 방법이 짙으면서 흐려지기 때문에 앞에 있는 것을 차츰 흐리게 그린다.
좋은 먹색을 만드는 데는 좋은 먹과 좋은 벼루 그리고 사람이 먹을 성급하게 갈지 말고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갈아야 좋은 먹물을 만들 수 있다. 예로부터 게으른 자가 먹을 잘 간다고 했듯이 오래 갈면 갈수록 먹은 윤기가 있고 짙어진다.
먹은 재료가 나무나 기름을 태워서 만든 그을음, 즉 탄소입자와 아교가 합쳐 만드는 만큼 좋은 먹을 구해서 오래 사용하는 것이 좋다.
먹색은 변화가 있어야 되는 만큼 먹을 짙게 갈고 깨끗한 접시라야 좋은 먹색을 만들 수 있다. 먼저 붓봉이 긴 붓을 맑은 물에 씻은 다음 물통의 가장자리에서 앞으로 지그재그 식으로 붓을 돌리면서 고르게 먹색을 만든다. 이때 물의 양을 조절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붓을 수직으로 세워 물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무난하고 일단 먹색이 고르게 됐다 싶으면 접시의 가장자리에 붓을 훑어 다시 물기를 빼고 붓봉이 흩어지고 쓰러진 것을 똑바르게 정돈한다. 일단 다른 종이에 약간 붓을 눌러보아 물기가 적당한가를 확인하고 그림 그리기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재차 다시 먹색을 만들고자 할 때는 다시 붓을 씻어 처음 사용한 접시를 처음과는 정반대로 앞에서 위로 붓을 지그재그로 올려가면서 먹색을 만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먹색은 짙은 것에서 흐리게 하기 때문에 다시 먹색을 만들면 처음 먹색과 같아지기 때문에 이것을 피하기 위해 한번 만든 먹으로 그림을 대체로 완성한다. 이 방법은 초보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방법이나 수묵화의 먹색은 생명과 같음을 상기해 볼 때 가능하면 한 번 찍어 만든 먹색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접시는 가능한 한 크고 흰색으로 된 사기그릇이 먹색의 변화를 잘 나타내어 준다. 연습을 할 때는 여러 번 먹색을 만들어야 하므로 일일이 접시를 씻는 것보다는 젖은 걸레로 접시를 닦아서 쓰는 것이 편리하다.
담묵만을 쓰고자 할 때는 접시에 물을 떨어뜨린 다음 먹을 섞어 골고루 휘저어 사용한다.
선을 연습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 조절한 먹색으로 여러 개의 면을 만들어 먹물이 번지는 효과와 거칠고 메마르고 짙고 흐린 느낌이 나게 붓에 물기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칠해 나간다. 먹색의 변화는 붓의 물과 먹의 양이 결정지어 주지만, 붓의 속도, 즉 필력에 의해 많이 달라진다. 먹색이 흐리든, 짙든 속도를 일정하게 연습해야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붓은 측필로 사용하는 만큼 선을 그을 때와 마찬가지로 붓끝에 힘을 주어 누르듯이 붓을 종이에 댄다.
먹색은 먹의 질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지만 종이에 따라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여러 종이를 사용해 보고 자기 마음에 맞는 종이와 먹을 택해서 그린다. 경우에 따라서 먹에 아교 물을 약간 섞어 쓰기도 하는데, 초보자인 경우에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교를 섞어 쓰면 먹이 잘 번지고 우연의 효과는 있지만 먹색이 가벼워 보인다.
먹은 벼루에 갈아 이틀정도까지는 쓸 수 있으나 이틀이 지나면 아교가 썩어 냄새가 나므로 쓸 만큼만 갈아 쓰고 오래된 먹은 깨끗이 물로 씻어 버린다. 가장 윤기 있는 먹색을 내려면 그때그때 갈아 쓰고 남은 먹은 못 쓰는 종이나 물로 닦아내어 다음 그림 그릴 때 편하게 한다. 동양의 먹은 서예의 무대 위에서 고색창연한 묵색을 자랑하면서 그윽한 묵향과 함께 많은 문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