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돈 조반니 [창가로 오라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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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돈 조반니
오페라 「돈 조반니」는 「피가로의 결혼」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모차르트의 오페라이다. 이 두 오페라는 초연 당시 모두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그 이전의 모든 오페라들이 진부하게 여겨질 만큼 파격적인 신선함을 이 장르에 제공했다. 국내 오페라 계는 그러나 유독 「피가로의 결혼」에 비해 「돈 조반니」에 대해서는 무대를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부담스럽기도 하였으며, 「피가로의 결혼」처럼 유명한 아리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타이틀롤인 돈 조반니 역을 소화해낼 남자 가수가 국내에는 마땅히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노래 실력의 차원을 떠나서, 돈 조반니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인격을 겉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수준 높은 연기력이 요구된다. 모차르트가 「돈 조반니」를 작곡할 당시만 해도 이 오페라의 매력은 마지막 장면에 있었다. 선량한 여인들을 농락하던 무책임하고 뻔뻔스런 악인이 지옥에 떨어져 불에 타죽는 모습은 모든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갈구하는 권선징악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심지어는 그 징벌의 주체가 악인의 희생양 가운데 한 명이라는 점은 일종의 복수극으로써의 짜릿함까지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의식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이 오페라에 더욱 다양한 관점을 부여했다. 선과 악에 대한 가치관이 느슨하게 풀어지면서 타이틀롤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복합적이고 관대해졌으며, 초연 당시 그리 부각되지 않았던 하인 레포렐로의 희극적인 역할은 오페라 「돈 조반니」의 빼놓을 수 없는 감초가 되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지난 4월 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소개된 「돈 조반니」는 2002년 프란체스카 잠벨로의 연출로 초연된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 프로덕션이었다. 서울 땅에서는 제레미 서클리프의 재연출로 완성되었지만 기존의 틀은 거의 바뀌지 않았으며, 3시간 30분짜리 ‘풀 버전’(휴식시간 포함)이었다는 점에서 오페라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겼다. 잠벨로 연출의 최고의 묘미는 마지막 ‘반전’에 있었다. 얄미울 정도로 자기반성을 모르고 철저히 여자들을 농락하는 타이틀롤의 뻔뻔스런 역할과 화염 속에 떨어지는 장면까지는 기존의 「돈 조반니」가 가지고 있었던 권선징악의 메시지에 충실한 듯 여겨졌지만, 발가벗은 여인네를 부둥켜안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마지막 장면은 지옥에서까지 철저하게 쾌락을 즐기는 돈 조반니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원통형의 미니멀한 무대와 최소한의 소품, 그리고 각 배역들이 입은 원색의 의상들은 반대급부로 오페라의 줄거리와 음악, 그리고 성악가들의 캐릭터를 더욱 눈에 띄게 부각시켜 주었다. 깔끔하게 잘 번역된 대본은 3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이 작품을 접하는 관객들조차 흥미진진하게 즐기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극 중 초반 성악가들은 첫 무대라는 부담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베이스 연광철을 제외하고는 대단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리아는 물론 중창에서 눈에 띌 만큼 서로 박자가 엇갈리는 실수를 하는가 하면 오케스트라와의 호흡도 불안했다. 그러나 점차 극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가수들은 안정을 찾았고 각자의 개성과 잠재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무엇보다 이번 공연을 통해 새롭게 발굴한 최고의 보물은 돈나 안나 역을 열연한 소프라노 박은주일 것이다. 드라마틱하면서도 안정된 발성과 호소력, 그리고 표정이 넘치는 목소리는 연출가가 강조하고자 했던 극 중 비극적인 요소에 시너지 효과를 더하며 또 한 명의 숨어 있던 재원의 등장을 알렸다. 특히 그녀가 부른 ‘이제 그 악당이 누군지 아시죠Or sai chi l’onore’와 ‘내게 잔인하다고 말하지 마세요Non mi dir, bell’idol mio’는 이날 최고로 많은 박수를 받아냈다. 반면 타이틀롤의 바리톤 지노 킬리코는 돈 조반니 역만 수백 번을 불렀다는 스페셜리스트답게 안정된 노래와 연기를 선보이긴 했지만 그만큼 다소 매너리즘이 느껴져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지옥불 장면 이후 여인을 안고 있는 마지막 반전 장면은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전달력이 떨어졌다. 오타비오 역을 노래한 나승서는 선전했지만 상대역 돈나 안나의 넘치는 카리스마에 빛이 가려졌다. 돈나 엘비라를 노래한 소프라노 정민희 또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눈에 보였지만 흔들리는 가창력과 애매한 연기로 인해 극 중 정체성을 마지막까지 찾지 못했다. 이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모차르트 가수로 자리를 잡은 베이스 연광철의 레포렐로 연기는 역시나 기대 이상이었다. 반전 효과를 최대화시키기 위해 희극성을 최대한 배제한 연출가의 의도가 곳곳에 드러났지만, 그럼에도 연광철은 굳이 과장된 액션을 시도하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배역이 가진 풍자와 해학의 묘미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며 본래 모차르트는 웃음을 잃지 않는 ‘유머러스’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앙상블이 산만하다가도 레포렐로가 등장하면 안정되고 중심을 잡을 만큼, 이번 「돈 조반니」에서 연광철의 역할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글 _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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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yahoo akwaltz03 (akwaltz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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