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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에서 감사를 배운 사람

고목의향기 2008. 12. 9. 16:35
                 소록도에서 감사를 배운 사람   

 

               소록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K성직자

 앞에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성직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한센병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노인을 바라보며 K성직자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저에게는 모두 열 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한센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그 아이가 열한 살 때였지요."
"......"
"발병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 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한센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만 나는
마주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 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한센병을 얻게 된 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느냐?“는 거지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 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소록도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함께 올라와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 펴 주면 드러누워

자면 그만이고.
.
.

그러나 소록도에 버리고 간 아이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답니다.

 

잊어버렸던 아이,......

다시 또 먼 길을 떠나 그 아이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하나님께

기도해 왔는데 이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한센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고 내다 버린 채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믿는 마음~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버린 하나의 나무가 하나님의 힘으로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나를 깨닫게 하는 하나님!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겠노라고

 난 다짐했습니다.
,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음성

한센병 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 애는 내가 여기 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 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

여태껏 못 다한 사랑 모두 주고 싶습니다.

이 한 몸 다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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