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의 이해
1. 古體詩 : 漢代에 나타난 시형. (1) 樂府詩 : 漢의 武帝때 나타남. 시형은 五言이 원칙임. 당시의 人情과 風習을 노래함. 樂府 : 천자가 諸侯國을 일일이 살필 수 없어서 채시관을 보내 민요 유행어 風習등을 모아 천자국으로 보내면 그것으로 제후국의 민심알 수 있으며 이를 관장하는 부서가 악부임. 악부는 악곡에 맞추어 부를 수 있게 지어진 시체. (2) 고시 : 五, 七言이 있다. 句數가 自由롭고 韻字가 있으나 平仄法 없음.
2. 近體詩 : 근체시는 고체시에 이어 당나라 때 발생한 시형으로 고체시보다 작품상의 규칙이 엄격한 시이다. 구수가 일정하고 운자 있고 평측법 일정함. (1) 絶句 : 詩 한수가 4句로 된 것. ①五言絶句 : 1구가 5자로됨. 기승전결의 4구로 20자이다. 2.3調로 읽음. ②七言絶句 : 1구가 7자로됨. 기승전결의 4구로 28자이다. 4.3調로 읽음. (2) 律詩 : 詩 한수가 8句로 된 것. ①五言律詩 : 1구가 5자로 됨. 起聯, 聯, 頸聯, 尾聯으로 구성됨. ②七言律詩 : 1구가 7자로 됨. 起聯, 聯, 頸聯, 尾聯으로 구성됨. (3) 排律 : 시의 句數가 제한이 없는 시형. 오언과 칠언이 있음.
※押韻法 : 한자는 初, 中, 終聲의 세가지 소리로 갈라 초성을 字母라 하고 중, 종성을 합해서 韻母라 한다. 이 운모를 같은 계통의 글자로 맞추는 것을 押韻 이라하고 한 수의 詩 안에서 압운된 글자를 韻字라 한다. 그런데 이 운자는 옛 운서에 따라 고음대로 쓰므로 현대음과 다른 것도 있다. 종성이 없는 것은 중성만 같으면 같은 운이 된다. 짝수구의 맨 끝자를 원칙으로 하되 칠언시의 경우 1구의 맨 끝자도 압운됨. 〈五言絶句 〉 〈七言絶句〉 〈五言律詩〉 〈七言律詩〉 ○○○○○ ○○○○○○● ○○○○○ ○○○○○○● ○○○○● ○○○○○○● ○○○○● ○○○○○○● ○○○○○ ○○○○○○○ ○○○○○ ○○○○○○○ ○○○○● ○○○○○○● ○○○○● ○○○○○○● ○○○○○ ○○○○○○○ ○○○○● ○○○○○○● ○○○○○ ○○○○○○○ ○○○○● ○○○○○○● ● : 운자임
※平仄法 : 한자의 높낮이. 漢字의 운을 분류한 규장전운에서 평성 30자, 상성 29자, 거성 30자, 입성 17자등 106자로 표시됨. 중국어 음운 체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四聲이라고 일컬어지는 聲調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성은 평성 상성 거성 입성의 네가지를 말하는데 平聲은 平, 上聲 去聲 入聲을 합쳐 仄聲이라고 한다. 仄聲은 ㄱ, ㄷ, ㅂ, ㅅ등의 받침음이 들어 가는것. 平仄法이란 평성자와 측성자를 규칙적으로 배열하는 作詩法. 평측법 중 첫째 구 둘째 자가 平聲자로 시작하는 것을 平起式이라 하고, 仄聲으로 시작하는 것을 仄起式이라 한다. 오언 近體詩는 仄起式이 정격이고, 칠언 近體詩는 平起式이 정격이다.
※절구에서의 평측법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平起式(평기식) 仄起式(측기식) 〈五言絶句〉 〈七言絶句〉 〈五言絶句〉 〈七言絶句〉 ○○○●● ○○●●○○● ●●○○● ●●○○○●● ●●●○○ ●●○○●●○ ○○●●○ ○○●●●○○ ●●○○● ●●○○○●● ○○○●● ○○●●○○● ○○●●○ ○○●●●○○ ●●●○○ ●●○○●●○ ○ : 평성자 ● : 측성자
※漢詩의 名稱 ①起(起聯) : 시상을 불러 일으킴 ②承(함聯) : 시상을 이어받아 확대. 발전시킴 ③轉(頸聯) : 시상에 변화를 주어 비약 또는 전환 시킴 ④結(尾聯) : 전체의 시상을 주제속에 담아 마무리 지음.
※한시의 감상 ①작품의 형식 이해 ②시인이 나타 내고자 하는 정서 이해(先景後情) ③주제 파악 ④작자와 시제 안다. ⑤ 댓구법 이해 ⑥작품에 쓰인 수사법 이해 ⑦일구의 글자 수를 맞춘다(音數律) ⑧구의 끝의 글자가 압운되어 있어야 한다(音位律) ⑨구 중의 각 글자에 평. 측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音聲律)
漢 詩
春 興 鄭夢周(圃隱集) 春雨細不滴터니 봄비 가늘어 물방울을 이루지 못하더니 夜中微有聲이라. 밤중에 어렴풋이 빗소리 들리네 雪盡南溪漲하니 눈이 녹아 앞 시냇물이 불어나니 草芽多少生이라. 풀싹은 많이 돋아났을 것이다.
絶 句 杜甫(唐詩選) 江碧鳥逾白이요 강이 푸르니 새는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이라. 산이푸르니 꽃은 불타는듯 하네 今春看又過하니 금년 봄이 눈앞에 또 지나가니 何日是歸年고 어느날이 돌아갈 해인가.
花 石 亭 李珥(栗谷集) 林亭秋已晩하니 화석정에 가을이 이미 저무니 騷客意無窮이라.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네 遠水連天碧이요 멀리 있는 임진강물은 하늘에 이어져 푸르고 霜楓向日紅이라. 서리맞은 단풍은 하늘을 향해 붉구나 山吐孤輪月이요 산은 외로운 둥근달을 토해내고 江含萬里風이라.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오 변방의 기러기 어디로 가는가 聲斷暮雲中이라. 기러기 소리 저무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 시어 연구 林亭 : 숲속의 정자 騷客 : 시인과 문사 霜楓 : 서리맞은 단풍 暮雲 : 저녁 구름 塞鴻 : 변방의 기러기 山吐孤輪月( 산토고윤월) : 산이 외로운 달을 토해내다. 산위의 둥근 달이 외롭게 떠오름을 말함 暮 : 저물다. 何處去 : 어느 곳으로 가느냐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 울음 소리가 저무는 구름 속에 끊어지네(사라지네)
<작품의 이해> 이 시는 가을 풍경을 한가롭게 표현한 시이다. 늦가을을 나타내는 시어인 단풍, 서리, 기러기 등의 소재를 산과 강의 자연에 잘 배치하여 한폭의 서경을 보여주고 특히 색채어의 대비를 통해 선명한 가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즉 壁·紅·山·江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의미나 사상보다는 서경을 한폭의 그림과 같이 그린 서정시, 회화시이다. 특히 정중동(靜中動, 고요한 가운데의 움직임) 즉 달이 뜨고 물결이 출렁이는 모습을 그린 표현은 뛰어나다. 斷자는 보통 시에서 꺼리는 자로 옛사람들은 단명구(短命句)라 하였다. 그래서 그렇지는 않겠지만 율곡은 49세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마치었다. 그러니까 단명한 것이다.
▶ 화석정의 시상전개 1) 율시 : 절구와 같이 시상이 기·승·전·결의 4단 구성으로 전개되는데, 2) 시형 : 오언 율시 3) 시의 운자 : 제 2·4·6·8구의 끝자. 곧 窮, 紅, 風, 中 수련(首聯)에서 시상을 일으키고 (起) : 발상단계. 숲속의 정자에서 가을 경치를 바라보는 작자의 감회를 나타내어 시상을 불러 일으킴 함련( 聯)에서 시상을 받고, (承) : 전개단계 대구법을 써서 먼곳과 가까운 곳, 푸른빛과 붉은 빛을 선명하게 대조시켜서 시상을 발전시킴 경련(頸聯)에서 시상이 전환하여 표현되며(轉), : 전환단계 山과 江의 대조에 달과 바람을 더한 기교를 보여 시상을 전환시킴. 미련(尾聯)에서 시상을 결말짓는다.(結) ; 총괄단계 4) 시각적 심상과 청각적 심상이 결합된 공감각적 심상을 통해 작자의 무궁한 감회를 나타내어 시상을 총괄하여 마무리지음. 5) 주제 :
▶ 이이 李珥 [1536~1584]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이다. 본관 : 덕수 이고 호는 율곡·석담이다. 별칭 : 자 숙헌 시호 문성 활동분야 : 정치 출생지 : 강릉 본관 덕수(德水), 자 숙헌(叔獻), 호 율곡(栗谷)·석담(石潭), 시호 문성(文成), 강원도 강릉 출생이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1548년(명종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다가, 다음해 하산하여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22세에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혼인하고, 다음해 예안의 도산(陶山)으로 이황(李滉)을 방문하였다. 그해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하고, 이 때부터 29세에 응시한 문과 전시(殿試)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29세 때 임명된 호조좌랑을 시작으로 관직에 진출, 예조·이조의 좌랑 등의 육조 낭관직,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 등의 대간직, 홍문관교리·부제학 등의 옥당직, 승정원우부승지 등의 승지직 등을 역임하여 중앙관서의 청요직을 두루 거쳤다. 아울러 청주목사와 황해도관찰사를 맡아서 지방의 외직에 대한 경험까지 쌓는 동안, 자연스럽게 일선 정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하였고, 이러한 정치적 식견과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40세 무렵 정국을 주도하는 인물로 부상하였다. 그동안 《동호문답(東湖問答)》 《만언봉사(萬言封事)》 《성학집요(聖學輯要)》 등을 지어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왕에게 제시하였고, 성혼과 ‘이기 사단칠정 인심도심설(理氣四端七情人心道心說)’에 대해 논쟁하기도 하였다. 1576년(선조 9) 무렵 동인과 서인의 대립 갈등이 심화되면서 그의 중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더구나 건의한 개혁안이 선조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그만두고 파주 율곡리로 낙향하였다. 이후 한동안 관직에 부임하지 않고 본가가 있는 파주의 율곡과 처가가 있는 해주의 석담(石潭)을 오가며 교육과 교화 사업에 종사하였는데, 그동안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저술하고 해주에 은병정사(隱屛精舍)를 건립하여 제자교육에 힘썼으며 향약과 사창법(社倉法)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산적한 현안을 그대로 좌시할 수 없어, 45세 때 대사간의 임명을 받아들여 복관하였다. 이후 호조·이조·형조·병조 판서 등 전보다 한층 비중 있는 직책을 맡으며, 평소 주장한 개혁안의 실시와 동인·서인 간의 갈등 해소에 적극적 노력을 기울였다. 이 무렵 《기자실기(箕子實記)》와 《경연일기(經筵日記)》를 완성하였으며 왕에게 ‘시무육조(時務六條)’를 지어 바치는 한편 경연에서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런 활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조가 이이의 개혁안에 대해 계속 미온적인 태도를 취함에 따라 그가 주장한 개혁안은 별다른 성과를 거둘 수 없었으며, 동인·서인 간의 대립이 더욱 격화되면서 그도 점차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까지 중립적인 입장를 지키려고 노력한 그가 동인측에 의해 서인으로 지목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어서 동인이 장악한 삼사(三司)의 강력한 탄핵이 뒤따르자 48세 때 관직을 버리고 율곡으로 돌아왔으며, 다음해 서울의 대사동(大寺洞) 집에서 죽었다. 파주의 자운산 선영에 안장되고 문묘에 종향되었으며, 파주의 자운서원(紫雲書院)과 강릉의 송담서원(松潭書院) 등 전국 20여 개 서원에 배향되었다.
▶ 평생의 친구, 성혼과의 일화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윈 율곡은 3년 동안 자운산 선영에서 시묘살이를 마친 후, 금강산에 들어가기 직전에 성혼(成渾)을 처음 만났다. 열아홉살의 율곡과 스무살의 성혼은 이후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성혼은 원래 창녕사람이나 화석정이 있는 곳에서 6킬로 정도 떨어진 지금의 폭포어장이 있는 우계(牛溪, 파평면 늘로리)에 살았다. 우계는 그의 호가 되었다. 선조조에 사헌부 지평, 이조참의, 이조참판, 지중추부사, 좌참찬 등의 여러 직위를 역임하였으며 임란 때에는 관군에 가담하여 군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대 일본 강화를 주장하여 왕으로부터 내침을 받고 관직을 떠나 1598년 6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633년 그는 죽어서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파주 향양리에 그의 묘가 있으며, 파산서원 등에 제향되어 있다. 성혼은 성리학적 세계관에 뿌리를 둔 선비였으나, 현실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하려 노력하였던 실학자적 성격도 아울러 지녔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화석정 아래 임진강에 작은 배를 띄우고 놀았다. 그런데 갑자기 풍랑이 크게 일어 배가 기우뚱거리자 성혼은 놀라며 허둥댔는데, 율곡은 뱃머리에 서서 태연스레 시를 읊었다. 성혼이 놀라며, "어찌 변화에 대처하는 도리도 듣지 못하였단 말인가?"하자, 율곡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두 사람이 어찌 익사할 리가 있겠는가." 조금 후에 풍랑은 가라앉았다. 한편, 성혼과 율곡은 친구 송강 정철의 생일잔치에 초대되었는데, 가서보니 기생들이 함께 있었다. 고지식한 성혼은 기생을 못마땅히 여기었지만, 율곡은 웃으며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 이것도 하나의 도리라네"하며 함께 잔치를 즐겼다. 평생의 반려된 친구로 지내다가 율곡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성혼은 그보다 14년을 더 살면서 율곡을 잊지 못해 그의 기일(奇日)이 되면 늘 소복을 입었으며, 율곡의 인품과 우정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기곤 하였다.
▶ 불타는 화석정 [화석정의 현액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이다.] 1584년 율곡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고 몇 해 안 있어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났다. 선조임금은 서울을 빠져나와 저 북녘 멀리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임진강 나루에 도착한 임금님의 일행은 뱃길을 잡을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에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이 때 율곡선생님의 화석정은 임금님의 피난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피난길을 인도하던 문신 이항복은 미리 단단히 기름칠을 해두었던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 명령했으며 불타는 화석정을 등불로 삼아 임금과 백관, 호위 군졸을 태운 배는 무사히 강을 건너 피난할 수 있었다. 한편, 율곡선생님께서 왜놈의 침략을 미리 예견하시어 일찍이 화석정에 기름칠을 하여 두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화석정은 그 뒤 80년여 년이 지나 1673년(현종14) 이후지(李厚址) 등 율곡의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었으나, 또 한번 6·25 전쟁 때 불타 없어지게 되었는데 1963년 파주의 유림들에 의해 복원됐고, 1973년 정부의 유적정화사업 때 정비했다. 지금의 화석정 현판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이다. 화석정 안내문에도 기록되지 않아 미리 알고 오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십상이다.
화석정의 뜰에는 이 정자를 지은 율곡선생님의 5대조 이명신이 심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500여 년 된 거대한 느티나무가 관광객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펼쳐주고 있다. 화석정은 말없이 흐르는 강변을 굽어보는 절경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북녘에서 흘러 안으로 휘어진 임진강을 달래며, 갈라진 한반도의 반쪽 북녘 땅을 저 멀리 바라보며 율곡 선생님의 화석정은 우국(憂國)의 한을 안고 가슴아프게 그렇게 자리잡고 있다.
秋夜雨中 崔致遠 秋風唯苦吟이나 가을 바람에 오직 괴로이 읊나니 世路少知音이라. 세상에 알아주는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요 창 밖에는 밤 늦도록 비가 내리고 燈前萬里心이라. 등불 앞에선 만리를 향하는 마음이여 ▶기: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으로 시를 읊음-시적동기 ▶승: 타국 땅에서 느끼는 객수 ▶전: 고독한 심회의 심화 ▶결: 머나먼 고향을 그리는 고독과 향수
※知音 : 知音은 자기를 알아 주는 知己之友와 같은 뜻이다. 列子에 의하면 伯牙가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벗 種子期가 그 소리를 잘 알았다는데 종자기가 죽은 후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고 함. 종자기가 죽은 후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故事)와 관련이 있다.
▶ 최치원(857-?) 신라시대의 학자.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시조. 자 고운(孤雲), 해운(海雲). 869년(경문왕 9) 13세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874년 과거에 급제, 선주(宣州) 표수현위(漂水縣尉)가 된 후 승무랑(承務郞) 전중시어사내공봉(殿中侍御史內供奉)으로 도통순관(都統巡官)에 올라 비은어대(緋銀魚袋)를 하사받고, 이어 자금어대(紫金魚袋)도 받았다. 879년(헌강왕 5) 황소(黃巢)의 난 때는 고변(高)의 종사관(從事官)으로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초하여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 시어, 시구 풀이
秋風(추풍) : 가을 바람 唯(유) : 오직 苦吟(고음) : 괴로이 시를 읊조림 世路(세로) : 세상살이, 세상 살아가는 길, 처세의 방법 知音(지음) : 자기의 마음 속을 알아주는 사람. 백아(伯牙)가 거문고 소리를 친구인 종자기(鐘子期)가 잘 알아 주었다는 중국의 고사에서 나온 말 三更(삼경) :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중에 세 번째 시간. 한밤중,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
자시(子時), 병야(丙夜) 라고도 하며 자시(子時)에 해당한다 萬里心(만리심) : 먼 고향을 그리는 마음, 향수
▶ 작품 해설 기구(起句)에서는 서정적 자아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으로 시를 읊게 되었다는 시적 동기를 밝히고 승구(承句)에서는 타국 땅에서 느끼는 객수(客愁)를 표현한 뒤, 전구(轉句)에서는 점층 . 심화된 서정적 자아의 고독한 심회를 비에 감정 이입시켜 형상화하고 있다. 결구(結句)는 등불 앞에서 잠 못 이루며 머나먼 고향을 그리는 고독과 향수가 절실하게 나타난 주제구이다.
「추야우중(秋夜雨中)」은 5언 절구(五言絶句)이다. 깊어 가는 가을밤의 비바람 속에서 서정적 자아는 괴롭게 시를 읊는다. 시를 짓는 일도 괴롭지만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정적 자아는 밤늦도록 잠 못 들고, 등잔을 마주했으나 마음은 만리 길을 떠돈다. 이 작품은 '가을 바람/세상', '삼경(三更)/만리(萬里)'의 대구로 짜임새를 잘 갖추었다. 4구는 수구초심(首丘初心)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 ≒수구12(首丘). 수구초심이랍니다. 짐승도 죽을 때면 따뜻한 곳을 찾아 눕는다는데 하물며 사람이 고향 생각을 해야지.'한수산, 부초'호마의북풍.호사수구.)
▶ 시 정리 시형 : 오언절구 연대 : 신라 말기 성격 : 서정시 표현 : 대구법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제재 : 가을 밤비 주제 : 향수(고국에 대한 그리움) 출전 : <동문선> 제 19권 의의 : 육두품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좌절한 최치원의 심경이 표현되어 있음
▶ 백아절현(伯牙絶絃) (伯:맏 백. 牙:어금니 아. 絶:끊을 절. 絃:악기 줄 현.)
[준말] 절현(絶絃). [동의어] 백아파금(伯牙破琴). [유사어] 지음(知音), 고산유수(高山流水). [출전]《列子》〈湯問篇〉 백아가 거문고의 줄을 끊었다는 뜻. ① 서로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벗[知己]의 죽음을 이르는 말. ② 친한 벗을 잃은 슬픔.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수로 이름 높은 백아(伯牙)에게는 그 소리를 누구보다 잘 감상해 주는 친구 종자기(鐘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며 높은 산과 큰 강의 분위기를 그려내려고 시도하면 옆에서 귀를 기율이고 있던 종자기의 입에서는 탄성이 연발한다. "아, 멋지다. 하늘 높이 우뚝 솟는 그 느낌은 마치 태산(泰山)같군.""응, 훌륭해. 넘칠 듯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마치 황하(黃河)같군." 두 사람은 그토록 마음이 통하는 연주자였고 청취자 였으니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백아는 절망한 나머지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기(知己)를 가리켜 지음(知音)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春 曉 孟浩然 春眠不覺曉러니 봄잠이 깊이 들어 날 새는 것을 몰랐더니 處處聞啼鳥라. 여기저기에서 새소리 들리네 夜來風雨聲에 간밤의 비바람 소리에 花落知多少라. 꽃잎은 많이 떨어 졌겠지.
公 無 渡 河 歌 白首狂夫의 妻 公無渡河러니 임이여, 그 물 건너지 말랬더니 公竟渡河로다 임은 기어이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하니 물에 빠져 돌아 가시니 當奈公何오. 가신 임을 어찌할꼬.
黃 鳥 歌 고구려 유리왕 翩翩黃鳥여 펄펄 나는 꾀꼬리여 雌雄相依로다. 암수 서로 정답구나 念我之獨이여 외로와라, 이 몸이여 誰其與歸오. 뉘와 더불어 돌아갈꼬. ※《三國史記》에 보면, 유리왕은 禾姬와 漢나라 여인인 雉姬를 繼室로 맞았으나 두 여인은 질투가 심하였다. 왕이 사냥을 가서 돌아오지 않자 두 여인은 다투어 치희는 제 고향으로 갔다. 왕이 돌아와 이 사실을 듣고 급히 달려 좇았으나 치희는 노하여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외롭고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황조가를 지었다고 한다.
丹 心 歌 鄭夢周 此身이 死了死了하여 이 몸이 죽고 죽어 一百番更死了하여 일백 번 고쳐 죽어 白骨이 爲塵土하여 백골이 진토되어 魂魄이 有也無라도 넋이라도 있고 없고 向主一片丹心이야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寧有改理也歟아. 가실 줄이 있으랴?
與隋將于仲文詩 乙支文德(현존하는 우리나라 最古의 한시) 神策究天文이요 귀신 같은 책략은 천문을 궁구하였고 妙算窮地理라. 오묘한 계획은 지리를 궁구하였도다. 戰勝功旣高하니 전쟁에 이겨 그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하라. 만족함을 알고 그치기를 바라노라.
閨 怨 林悌(1549∼1587) 十五越溪女가 열 다섯 살 아름다운 소녀가 羞人無語別이라. 남 부끄러워 말 못 하고 헤어졌네 歸來掩重門하고 돌아와 문 꼭꼭 걸어 닫고는 泣向梨花月이라. 배꽃처럼 하얀 달을 보고 눈물 흘렸다네.
佛 日 菴 이달《1539∼1613》 山寺白雲中인데 절은 흰 구름 가운데 있는데 白雲僧不掃라 흰 구름을 중은 쓸지 않네 客來門始開하니 손이 와서 비로소 문을 여니 萬壑松花老라. 온 골짜기에 송화 가루 날리누나.
閑山島夜吟 이순신《1545∼1598》 水國秋光暮하니 물나라(한산도)에 가을 빛이 저무니 驚寒雁陳高라. 추위에 놀란 기러기 떼 높이 떴다. 憂心輾轉夜에 근심스런 마음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밤에 殘月照弓刀라. 새벽달이 활과 칼을 비추는 구나.
送 人 鄭知常《 ?∼1135》 雨歇長堤草色多하니 비 개인 긴 강둑에 풀빛이 짙으니 送君南浦動悲歌라. 남포로 임 보내니 슬픈 노래 북받치네. 大同江水何時盡고 대동강 물은 어느 때에 다 마르리. 別淚年年添綠波라. 이별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보탬이라.
山 行 杜牧《803∼852》 遠上寒山石徑斜하니 멀리 한산에 오르매 돌길이 비껴 있으니 白雲生處有人家라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있구나. 停車坐愛楓林晩하니 수레 멈추고 앉아 늦게 물든 단풍 숲 즐기니 霜葉紅於二月花라. 서리 맞은 잎이 2월의 꽃보다 붉구나.
山 中 問 答 李白《701∼762》七言絶句 問余何事棲碧山하고 (누가)나에게 묻기를,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사는고 笑而不答心自閑이라. 웃으며 대답 않으니 마음은 스스로 한가롭구나. 桃花流水杳然去하니 복사꽃이 물에 흘러 아득히 떠 가니 別有天地非人間이라. 따로 천지가 있어 인간 속세 아니로다. ※주제 : 世俗을 超越한 達觀의 境地
有 客 金時習《1435∼1493》 有客淸平寺에 청평사의 나그네 春山任意遊라. 봄 산에 뜻대로 노는구나. 鳥啼孤塔靜이요 외로운 탑은 고요한데 새는 울고 花落小溪流라. 작은 시냇물에 꽃이 떨어진다. 佳菜知時秀요 아름다운 나물은 때 맞춰 돋아나고 香菌過雨柔라. 향기로운 버섯은 비 맞아 부드럽네 行吟入仙洞하여 길 가며 읊어 선동으로 들어서니 消我百年憂하노라. 나의 백년 근심이 사라지노라.
峨眉山月歌 李白 峨眉山月半輪秋 아미산월 반조각의 가을 影入平羌江水流 달빛은 평강에 드리워져 흐른다. 夜發淸溪向三峽 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으로 갔는데 思君不見下 州 그리운 벗을 만나지 못한 채 유주로 내려가누나. ※李白이 읊은 촉나라의 깊은 산협과 영월이 어딘지 닮은 데가 있어 김삿갓이 읊은시.
暗行御史 作詩 작품작자 : 春香傳의 李夢龍 今樽美酒千人血이요 금동이의 좋은 술은 천백성의 피요 玉盤佳肴萬姓膏라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이요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라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도다. ·원작자 : 명나라 사신 ·작 자 : 成以性(이조 광해군때 성안의의 아들) ·주 제 : 가렴주구의 諷刺, 탐관오리에 대한 叱咤
踰大關嶺望親庭 申師任堂 慈親鶴髮在臨瀛인데 어머님은 백발이 되어 강릉에 계시건만 身向長安獨去情이여 이 몸은 서울향해 홀로 떠나는 마음이여 回首北坪時一望하니 머리돌려 북평 땅을 한번 돌아보니 白雲飛下暮山靑이라 흰구름 아래로 고향산천은 저물어가네. ·臨瀛 : 강릉의 옛이름 ·北坪 : 강릉에 있는 지명. ·주제 : 친정어머니를 떠나는 여인의 한.
子夜吳歌 李白 長安一片月에 장안에는 한 조각의 달 萬戶 衣聲이라 온 집에서 다듬이질 소리 秋風吹不盡하니 가을 바람 불어 그치지 아니하니 總是玉關情이라 이 모두 옥문관의 정이라 何日平胡虜하여 어느 날에나 오랑캐를 평정하고 良人罷遠征고 남편은 원정을 끝내게 될고? ·長安 : 당나라 서울, 여기서는 원정 나간 남편의 아내가 있는 곳 ·玉關情 : 멀리옥문관에 원정 나간 남편을 생각하는 정. ·胡虜 : 중국 서북쪽의 이민족인 흉노를 뜻함.
山寺夜吟 鄭澈 蕭蕭落葉聲을 쓸쓸히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를 錯認爲疎雨라 성긴 비로 잘못 알아 呼僧出門看하니 중 불러 문을 나가서 보라하니 月掛溪南樹라 달이 시내 앞 가지에 걸렸다고 하네. ·蕭蕭 : 쓸쓸한 소리의 의성어 ·疎雨 : 빗방울이 이따금 떨어지는 비
秋庭 金正喜 老人看黍席에 늙은인 기장 말리는 망석을 보고 있는데 滿屋秋陽明이라 집에 가득 가을 볕이 발구나 鷄逐草蟲去하여 닭은 풀벌레를 쫓아가 菊花深處鳴이라 국화 떨기 속에서 한가로이 우네. ·逐去 : 쫓아가다로 풀이됨 ·菊花深處 : 국화 떨기 속
江雪 柳宗元 千山鳥飛絶이요 온 산에 새는 날지 않고 萬逕人 滅이라 모든 길에는 사람의 자취도 끊어졌도다 孤舟 笠翁이 외로운 배에 도롱이와 삿갓 쓴 늙은이만이 獨釣寒江雪이라 홀로 눈 오는 추운 강에서 낚시질 하네. ·千山 : 온산 ·萬逕 : 모든 길 · (도롱이 사) ·笠 : 삿갓 립
題僧舍 李崇仁 山北山南細路分하니 산의 남과 북으로 오솔길이 나뉘고 松花含雨落 紛이라 송화가루가 비를 머금고 어지러이 떨어진다 道人汲井歸茅舍하니 도인은 물을 길어 초가집으로 돌아오고 一帶靑煙染白雲이라 한 줄기 푸른 연기가 흰구름을 물들인다 ·紛(어지러울빈,분) : 어지럽게 흩어진 모습 ·汲 : 물길급 ·茅 : 띠모 ·帶 : 띠대 ·茅舍 : 띠로 엮은 집, 여기서는 절을 의미함. ·染白雲 : 밥을 지으며 나온 연기가 구름에 뒤덮이는 모양을 표현
山亭夏日 高騈 綠樹陰濃夏日長하니 우거진 나무 그늘 짙고 여름 해는 긴데 樓臺倒影入池塘이라 누대의 거꾸로 비친 그림자는 못 속에 들어있네 水精簾動微風起하니 수정발이 움직여 실바람 일고 一架薔薇滿院香이라 한 시렁에 핀 장미가 집안 가득 향기롭구나. ·倒 : 넘어뜨리다 ·簾 : 발렴 ·架 : 사닥다리가
山中雪夜 李齊賢 紙被生寒佛燈暗하니 종이 이불에선 한기가 일고 불등이 어두우니 沙彌一夜不鳴鐘이라 사미승은 밤새도록 종을 울리지 않았구나 應嗔宿客開門早나 나그네가 문을 일찍 연다고 응당 화낼테지만 要看庵前雪壓松이라 암자 앞 소나무에 눈 쌓인 걸 꼭 보리라. ·紙被 : 종이로 만든 이불 ·沙彌 : 불문에 갓 들어온 남자 중. 沙彌僧 ·要看 : 모름지기 보고자 한다. ·彌 : 두루미 ·嗔 : 화낼진 ·庵 : 암자암
訪金居士野居 鄭道傳 秋陰漠漠四山空하니 가을 구름 아득하고 온 산은 텅 비었는데 落葉無聲滿地紅이라 낙엽은 소리 없이 땅에 가득 붉구나 立馬溪橋問歸路하니 시내 다리에 말을 멈추고 돌아갈 길을 묻자니 不知身在畵圖中이라 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듯하더라 ·秋陰 : 가을 구름 ·漠漠 : 아득한 모양 ·不知身在畵圖中 : 아름다운 경치에 정신이 팔려 자신이 그림속에 파묻 혀 있는 듯함.
秋思 張籍 洛陽城裏見推風하니 낙양성 안에서 가을 바람을 맞으니 欲作家書意萬重이라 집으로 편지를 쓰고자 하나 생각은 만 겹니네 復恐 說不盡하여 바쁘고 바빠 사연을 다 쓰지 못하였으나 걱정스러워 行人臨發又開封이라 행인이 길을 떠남에 임하여 봉한 것을 열어보네 ·意萬重 : 생각은 만 겹임 ·復恐 : 다시∼할까 걱정된다. ·行人臨發又開封 : 미심쩍어 확인한다.
大同江 鄭知常 雨歇長堤草色多한데 비 그친 긴 둑에 풀이 다부룩한데 送君南浦動悲歌라 남포에서 님을 보내자니 슬픈 노래 북받친다 大同江水何時盡고 대동강 물이 언제 마를 수 있을까? 別淚年年添綠波니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보탬이라. ·草色多 : 풀빛이 많다. ·歇 : 쉬다. 그치다. 값싸다 ·動悲歌 : 슬픈 노래가 끓어 오름.
絶命詩 黃玹 鳥獸哀鳴海嶽嚬하니 짐승들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니 槿花世界已沈淪이라 무궁화 세계 이미 망해 버렸도다 秋燈掩卷懷千古하니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를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이라 인간 세상에 지식인 되기가 어렵구나 ·絶命詩 : 목숨을 끊는시. 자결시 ·淪 : 빠질륜 ·掩 : 덮을엄 ·海嶽嚬 : 바다와 산도 乙巳條約이 체결된 소식을 듣고 언짢아 찡그리다 ·槿花世界 : 무궁화 세계, 곧 우리나라
落花巖 洪春卿 國破山河異昔時라 나라가 망하여 산하가 옛적과 다르거늘 獨留江月幾盈虧오 홀로 강 위에 뜨는 달만 몇 번이나 차고 기울었는가 落花巖畔花猶在하니 낙화암 언덕에 꽃이 아직 있으니 風雨當年不盡吹라 풍우 당년에 다 떨어지지 않았나보다 ·國破 : 나라가 망해 없어짐. 여기서는 백제의 멸망. ·畔 : 밭 두덕, 가. ·盈虧 : 달이 가득참과 이지러짐(휴) ·不盡吹 : 다 불리어 없어지지 않음. ·花猶在 : 꽃이 아직도 있음. 꽃은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궁녀의 상징.
北征詩 南怡 白頭山石磨刀盡하고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하고 豆滿江水飮馬無라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이면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리오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랴.
江村 杜甫 淸江一曲抱村流하니 맑은 강 한 굽이는 마을을 감싸고 흘러가니 長夏江村事事幽라 긴 여름날 강촌은 일마다 한가롭구나 自去自來堂上燕이요 절로 왔다가 절로 가는 것은 대청위의 제비요 相親相近水中鷗라 서로 친하고 가까운 것은 물 속의 갈매기로다 老妻畵紙爲碁局하고 늙은 아내는 종이에 그려 바둑판을 만들고 稚子敲針作釣鉤라 어린 자식은 바늘을 두들겨 낚시바늘을 만드네 多病所須唯藥物이니 병이 많아 필요한 것은 오직 약 뿐이니 微軀此外更何求오 미천한 몸에 이런 것 외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淸江一曲 : 맑은 강물 한 굽이 ·抱 : 안을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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