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더 흥미롭다.

Gerome, Jean-Leon cleopatra before caesar>
과정이다.
당대 최정상에 오른 두 남자를 어떻게 그처럼 완벽하게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기원 전 48년 클레오파트라는 남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후 강제로 폐위되어 유배된 상태였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침공한 카이사르의 막강한 힘을 빌어 왕권을 되찾는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로마의 최고 실력자인 카이사르와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위 그림에서 보면,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리를 정복한 카이사르가 이집트 왕궁에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몰래 그에게 접근하려던 그녀는 기막힌 계락을 떠올렸다. 스스로 양탄자 위에 드러누운 뒤 충복에게 자신의 몸을 양탄자로 둘둘
말 것을 명령했다.
충복은 어깨에 맨 양탄자를 호위 병사들에게 보인 후 집정관에게 줄 값진 선물을 가져왔다고 둘러댔다.
큼직한 양탄자는 카이사르의 눈길을 끌었고 호기심이 발동한 카이사르는 서둘러 양탄자를 풀게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양탄자를 펼치기가 무섭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반라의 여왕이 비너스처럼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완전히 반한 카이사르는 연인이 되었음은 말한 나위가 없고, 여왕의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그녀를 왕좌에 앉혔다.
여왕은 카이사르의 권력을 이용해 왕권을 되찾고 피맺힌 복수를 감행할 수 있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갑작스럽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안토니우스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최후를 맞았고, 역사가들은 그녀가 독사에 물려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클레오파트라를 그릴 때는 독사가 벌거벗은 여왕의 젖가슴을 무는 자극적인 장면을 선택하는 것이 관습처럼 되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에로티시즘이 강하게 풍겨 나오는 것은 죽음과 성을 한 쌍으로 묶어 표현했기 때문이다.

The Death of Cleopatra
유혹해 희생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을 이용해 왕권을 차지했고 애인들의 막강한 힘을 빌어 정적을 제거하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플루타르크는 클레오파트라의 신비로운 죽음에 대해
'여왕의 갑작스런 죽음은 탐스런 무화과 바구니를 든 농부가 여왕을 방문한 직후에 일어났다.
무화과 바구니에 맹독성이 강한 독사가 들어 있었던 것일까?' 라고 강한 의문을 던졌다.
들라크루아는 클레오파트라를 방문한 농부의 바구니 속에 숨겨져 있는 뱀을 그려 넣어 극적인 죽음을 예견하고 있다.
우리가 클레오파트라 라고 부르는 여왕은
클레오파트라 3세 이다
이집트 왕조에서는 여왕이 제법 있었는데
고대 이집트 역사 연대기 문헌을 보면 클레오파트라의 시대가
제법 있었다. 몇 명의 클레오파트라 라는 이름을 가진 여왕들 중
가장 활약상이 두드러졌던 여왕이 클레오파트라 3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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