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산 중에서)
栗谷(율곡) 李 珥(이 이)
採藥忽迷路 (채약홀미로) 약 캐다가 갑자기 길을 잃었다.
千峰秋葉裏 (천봉추엽리) 일천 봉우리 가을 낙엽 속에서,
林末茶烟起 (임말차연기) 숲 끝에 차 달이는 연기가 일어나네.
採 : 캘 채, 藥 : 약 약, 忽 : 갑자기 홀, 迷 : 미혹할 미, 路 : 길 로
千 : 일천 천, 峰=峯 :봉우리 봉, 秋 : 가을 추, 葉 : 잎 엽, 裏 : 속 리
山 : 뫼 산, 僧 : 중 승, 汲 : 길을 급, 水 :물 수, 歸 : 돌아갈 귀
林 : 수풀 림, 末 :끝 말, 茶 : 차 차, 烟=煙 :연기 연, 起 :일어날 귀
율곡은 13세에 진사(進士) 초시에 합격했으나 3년 뒤 겪어야 하는 어머니의 죽음은 하루아침에 어린 소년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어머니 신사임당의 3년상을 치르고 나서 율곡은 홀연히 금강산으로 들어가 불문(佛門)을 기웃거렸다. 율곡이 뒷날 茶의 심오한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산중생활 때문이었다고 보고 있다. 호(號)까지 의암(義庵)이라 지은 율곡은 산골짜기 암자에서 좌선하고 있는 한 스님을 만난다.
“여기서 무얼 하시오?”
스님은 그저 웃을 뿐이다.
“무엇으로 요기하고 지내시오?”
스님은 소나무를 가리키면서,
“저게 내 양식이오.”
율곡은 점점 더 끌려갔다.
“공자와 석가 중 어느 분이 성인이시오?”
“그대는 노승을 놀리지 마시오.”
율곡이 내쳐 묻는다.
“불교는 오랑캐의 법이니 중국에는 시행 할 것이 못되겠지요?”
“순임금은 동방 사람이며 문왕은 서방 사람이니 그들도 역시 오랑캐란 말이오?”
율곡은 궁금한 것을 또 묻는다.
“불교의 오묘함이란 것도 우리 유교를 벗어날 것이 없는데 왜 굳이 유교를 버리고 불법을 구하는 겁니까?”
“유교에도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 있소?”
그들의 대화는 끝이 없다. 이번에는 스님이 묻는다.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란 건 무슨 말이요?”
“그것 또한 눈 앞에 있는 경계지요.”
스님이 빙그레 웃는다. 율곡이 다시 덧붙인다.
“솔개가 날아 하늘에 이르고 고기가 못 속에서 뛰노는 것이 색인가요, 공인가요?”
“색도 아니요 공도 아니요. 그건 진리의 본체 그것이니 어찌 그런 시 구절을 가지고 비겨서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율곡은 웃으며 말하였다.
“이름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이면 그것은 벌써 현상 경계이겠는데 어떻게 본체라고 하는 것이오? 만일 그렇다고 하면 유교의 오묘한 대목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말로써 전할 수 없는 것이고 불교의 이치도 글자밖에 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오.”
스님은 놀랐다.
“그대 속된 선비가 아니구려. 나를 위해 시 한 장 써서 ‘저 솔개가 날고 고기가 뛴다’는 구절을 풀어 주시오.”
사흘 뒤, 율곡은 다시 암자를 찾았다.. 스님은 벌써 암자를 떠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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