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야우중(秋夜雨中)
최치원 (崔致遠)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하니 가을 바람에 오직 괴롭게 읊조리니
擧世少知音(거세/소지음)이라 온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에 창밖으로 삼경에 비 내리는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이라 등불 앞 이 마음 만 리로 향하네
[어구풀이]
唯(유) 오로지, 오직. 苦(고) 괴롭다. 吟(음) ?슈?. 窓(창) 창문. 燈(등) 등잔불.
擧(거) ①들다 : 擧手(거수 ; 손을 들다) ②모두, 다(擧國(거국 ; 온 나라, 국민 전체)
擧世少知音(거세소지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두 가지가 전하는데, 의미는 비슷함.
知音(지음) ①음을 알다. 知音(마음을 알아주는 친한 벗으로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
苦吟(고음) : 고심하여 시를 지음. 三更(삼경) : 밤 11 - 1시 사이.
萬里心(만리심) : 마음이 아득한 곳(만리)에 가 있음(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작자가 세상에 자기를 알아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절대적인 고독감을 표현한 명시이다. <동문선〉에는 '세로'(世路)가 '거세'(擧世)로 씌어 있다. 그의 120여 편에 달하는 시 가운데 시상의 전개나 구조적인 긴밀성이 뛰어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시에는 만리 타국 땅에서 가을을 맞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잘 나타나 있다.
작가의 시상(詩想)은 제1구의 '추풍유고음'에 드러나 있고, 그 절대고독의 원인소는 2구의‘소지음’이다. 3구에 나오는 ‘삼경우’는 작가의 눈물이요. 4구의 ‘만리심’은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고 떠도는 작가의 심정이다. 특히 3, 4구에서 밖과 안, 시간과 공간, 청각과 시각이 대비를 이루면서 작가의 고독한 심사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에 대해 귀국 전과 귀국 후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언제 이 시가 씌어졌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을밤 타국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감정적 동감을 얻는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모두 정신적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 867 ~ ? )]
최치원은 신라말기 정치인, 학자, 문장가, 서예가로 유교, 불교, 도교 및 노장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던 시라의 대표적인 지성이었다. 경주출신으로 경주최씨의 시조이며, 12세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 18세에 빈공과에 급제하였고, 29세때 조국 신라로 돌아와 중앙 부서의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그러나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며 외직을 자청, 지금의 함양, 서산 등지의 태수를 지냈으며, 40세 무렵에 이르러서는 이미 망조가 든 나라에서 벼슬하는 것을 단념하고 은거를 결심한다. 관직을 내어놓고 전국 각지를 유랑하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친 것으로 전한다.
명문으로 이름높은 ‘토황소격문’과 수많은 글을 남겼으며 대표적인 시문집으로 《계원필경》이 있다. 서예가로서도 이름이 높은 그는 <진감선사비>를 직접 짓고 썼다.
매 화 (梅 花)
왕안석(王安石)
墻角數枝梅(장각수지매)여 : 담장 모퉁이에 핀 몇 가지 매화꽃이여
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로다 : 추위를 무릅쓰고 홀로 피었구나.
遙知不是雪(요지불시설)이니 : 아득하나 그것이 눈이 아님을 알겠으니
爲有暗香來(위유암향래)라 : 그윽한 매화 향기 불어오기 때문이어라.
墻(담 장) 枝(가지 지) 凌(깔볼 능, 능가할 능) 遙(멀요, 아득할 요)
爲有(~있기 때문이다. ~이기 때문이다) 暗(어둘울 암, 몰래 암)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요즘처럼 이른봄날 꽃샘추위레 피어오르는 매화. 매화는 일년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피는 꽃입니다. 오늘은 왕안석이 바라본 매화를 함께 느껴 보고자 합니다. 매화는 엄동설한을 이기고 개화하는 꽃입니다. 사방이 쌀쌀한 기온으로 뒤덮혀 있을때도 매화는 굴하지 않고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냅니다. 왕안석이 살았던 시기는 어쩌면 매화가 피는 이런 주변의 여건과 닮아 있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기 때문에 개혁을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변화와 개혁은 항시 많은 저항을 불러 일으킵니다. 왕안석이 신법을 내걸고 개혁을 하려고 하였지만 당시 기득권층의 저항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기구에서 정원의 좋은 곳에 자리하지 못하고 담장 모퉁이에서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두어 줄기 매화를 상정합니다.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 이렇듯 매화처럼 주목받지 못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승구에서는 주변의 여건이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시적화자는 꿋꿋이 자라서 때맞춰 피는 매화를 상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홀로 가는 길입니다. 아무도 자신의 뜻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구에서는 주목받지 못해도, 관심의 중심에서 비켜났어도 희미하게 분간이 되지 않더라도 매화는 매화임을 알게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매화가 눈속에 있으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주변에 의해 진실이 가리워지더라도 진실은 드러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결구에서는 다른 식물과 달리 향이 있는 꽃이라는 말로 자신의 삶을 대변합니다. 사람은 향이 있어야 합니다. 눈속에서 피어 오르는 매화처럼. 그렇지만 함부로 향을 팔지 않아야 진정한 향이 될 것입니다.
왕안석[王安石, 1021-1086]
중국 북송의 시인·문필가. 왕안석은 신법(新法)이라는 혁신정책을 단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실용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남부출신의 신법당(新法黨)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북부출신의 대토지를 소유한 보수적인 구법당(舊法黨)과 대립하고 있으면서, 토지개혁, 정치개혁, 과거제 개혁 등 많은 개혁정치를 실시하였다. 그의 개혁정치는 많은 저항을 받았으나 그의 문장력은 동료와 적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는 우아하고 깊이 있는 글로써 당송8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우연히 읊다(偶吟;우음)
송 한 필
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요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이라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졌구나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가 가련하다 한 봄의 일이여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이라 비바람 속에서 왔다 가는구나
*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봄꽃이 피는계절이다. 봄꽃을 보면 송한필의 이 시가 생각난다. 앞의 두 구는 너무나 유명한 댓구이다. 작자는 이 구절로 봄날의 애상적인 느낌을 전한다. 오래 동안 봄을 기다려 겨우 핀 꽃이 간밤의 바람에 떨어졌다. 이 시 속에서 작자는 어떤 꽃을 보고 봄을 느꼈는지 모르지만 그가 보았던 봄꽃이 간밤의 비바람 때문에 사라졌다. 짧은 봄날에 살짝 피었다 애석하게 떨어진 봄꽃을 보고 작자는 안타까워 하고 있다. 백낙천도 “복사꽃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흩날리고, 배꽃은 아득히 내리는 눈처럼 떨어진다(도표화염염桃飄火焰焰, 이타설막막梨墮雪漠漠)”고 하였듯이 봄날 잠시 동안 우리를 즐겁게 하는 꽃을 보고 읊은 시는 고금이 다르지 않다.
절정이다 싶으면 어느새 시들고 떨어져야 하는 꽃의 운명이 마치 우리네 인생길과 같다. 세상 어디에도 영원함은 없던가. 너무도 짧은 순간에 가버리고 마는 꽃의 조락. 바람과 비에 의해 시들고 떨어지는 꽃. 그 꽃이 주는 이미지는 쓸쓸함과 가련함을 내포하고 있다. 모란이 지자 봄이 가버렸다는 김영랑시인의 시처럼 작자의 봄은 그렇게 지는 꽃과 함께 가버렸다.
금년 우리의 봄꽃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피었다가 언제쯤 순식간에 떨어져 버릴까. 우리는 또 얼마나 애석해 할까...
* 송한필(宋翰弼)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 문장가. 본관은 여산 ( 礪山 ). 자는 계응(季鷹), 호는 운곡(雲谷). 사련(祀連)의 4남 1녀 중 막내아들로, 익필(翼弼)의 동생이다. 그의 형 익필은 이이(李珥)를 따랐는데 동인들이 이이에 대한 원망을 익필에게 전가하여 일족을 노예로 삼았다. 그는 형 익필과 함께 선조 때의 성리학자 ·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이이는 성리학을 토론할 만한 사람은 익필형제뿐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이름이 높았다. 그의 시 32수와 여러 가지 저서들이 익필의 ≪ 구봉집 龜峯集 ≫ 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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