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한시(漢詩)

1別秦卿

고목의향기 2012. 3. 18. 14:08

 

別秦卿(별진경)  -  司空曙(사공서)

 

진경과 이별하며 - 사공서

 

 

知有前期在  (지유전기재)  앞으로 만날 기회가 있음을 알지만

 

難分此夜中  (난분차야중)  이 밤에 헤어지기는 참으로 힘들다

 

無將故人酒  (무장고인주)  옛 친구가 권하는 이 술잔이

 

不及石尤風  (불급석우풍)  뱃길을 막는 돌개바람만 못하랴

 

- 당나라 시인 사공서가 친구 노진경과 헤어지면서 쓴 시-

 

 

 

 

춘흥(春興) : 봄의 흥취

 

 

정 몽 주

 

 

 

春 雨 細 不 滴(춘우세부적)  봄비 가늘어 방울짓지 않더니,

     夜 中 微 有 聲(야중미유성)  밤중에 작은(가는) 비소리 들리네.

雪 盡 南 溪 漲(설진남계창)  눈 녹아 남쪽 개울이 불어나니

  草 芽 多 少 生(초아다소생)          풀싹은 얼마나 돋았을까 !

 

 

 

 

 

 

 

 

 

 

 

 삼도헌과 함께 춘흥 맛보기

 

 

 전국에 봄비 소식이 들립니다.

그러나 봄비가 내리면서 겨우내 얼었던 대지의 겨울한기를 씻어 내리고 있습니다.

봄꽃을 틔우기 위해 기다리는 나무들이 이 비를 맞고나서 보기 좋은 꽃망울을 밀어낼 것입니다. 산천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조금씩 고개 내미는 나뭇잎에는 신의 손으로 연두색 물감들이 칠해질 것입니다. 아래에서 포은선생이 느낀 봄날의 감흥을 함께 음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구(起句)는 시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구입니다. 이 구에서는 봄비가 소재로 선택되어 있으며, 가늘다는 표현 다음에 다시 물방울이 짓지 않는다(실비가 내려 처마 끝에 낙수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시어가 등장하여 아주 가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절묘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승구(承句)는 기구의 시상(詩想)을 이어받습니다. 따라서 기구와 공통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어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에서는 기구의 세(細)와 승구의 미(微)자에서 앞 구에서의 시상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이 두 글자는 서로 가늘고 미세하다는 뜻으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구는 청각적 감각이 두드러지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주위가 굉장히 고요해 낙숫물조차 만들지 못할 정도의 조용하고 가는 보슬비소리가 들린다는 시어로 고요한 밤을 잘 묘사해 내고 있습니다.

 

 

 전구(轉句)는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구입니다. 전환이 없으면 한시는 단조로움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이 구에서 시상의 전환은 곧 설진(雪盡)입니다. 앞 구에서 시상을 이어 받고자 한다면 강우(降雨)라고 썼을 것입니다. 즉 개울의 불어남이 봄비 때문만이 아닌 눈이 녹아내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계절적으로 이제 동장군이 물러가면서 서서히 봄이 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물이 불어난다는 의미의 창(漲)도 윗 구의 가늘다는 세(細)와 작다는 미(微)와는 다른 어감을 가지고 있는 시어입니다. 바로 이러한 단어를 통해 멋지게 시의 흐름을 바꾸어 나가는 지은이의 솜씨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결구(結句)는 시상의 맺음을 의미합니다. 풀싹이 의미하는 상징은 곧 봄[春]입니다. 결국 해석의 궁극적 의미는 봄이 얼마나 우리 곁에 다가왔을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주제는 작가의 봄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는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구입니다. 풀싹은 사람이 눈으로 보고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눈이 녹고 있음을 보고서 자연히 봄이 돌아와 파란 새싹이 돋아나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작가가 유추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에서 지은이는 봄의 느낌을 봄비에 의해 촉촉하게 젖은 싱그러운 이미지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봄꽃이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벌써 남쪽에선 매화가 만개했습니다. 나무에서 봄꽃이 필 때 땅에서는 새싹들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대지를 밀치면서 솟아오르는 새싹들을 바라보면서 그 위에 내리는 봄비, 그리고 봄꽃까지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참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작가 소개 : 정몽주[鄭夢周 1337~1392(충숙왕 복위 6~공양왕 4)]

 

 

 고려 말기 문신,학자.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본관은 영일(迎日).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하여 1391년 인물추변도감제조관(人物推辨都監提調官)을 지냈다.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이들을 제거하고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피살되었다. 오부학당, 향교를 세워 교육의 진흥을 꾀하는 한편, 《신율(新律)》을 간행하여 법질서의 확립을 기하고,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잡으려 하였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고 시문에 뛰어났다. 개성 숭양서원(崧陽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포은집》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서거정의 수기(삼도헌의 한시산책246)

 

 

 

 

 

울진 봉평비를 본 뒤 불영사를 제가 촬영하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睡起)

 


서거정(徐居正)

 


 

簾影深深轉(염영심심전) 발 그림자는 깊숙이 들어오고

   荷香續續來(하향속속래) 연꽃 향기는 끊임없이 풍겨오네.

   夢回孤枕上(몽회고침상) 꿈에서 깨어난 외로운 목침맡에

          桐葉雨聲催(동엽우성최) 오동잎의 빗소리 들리누나(재촉하네).

 

 

 


 

        주(註)

 

          ◎심심(深深) : 깊숙한 모습. ◎속속(續續) :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

       이 시를 허균은 “개미둑에서 방향을 틀고 선회한다”는 말로 평하였다.

       즉, 좁은 곳에서 몸을 잘 움직인다는 뜻이다.

       기구와 승구가 대로 되어있고 운자는 래(來), 최(催), 평성(平聲)이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서거정의 시는 대체로 “용容富艶”(찧을용, 얼굴용, 풍성할부, 고울염)

      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 작품 역시 관각문인(館閣 文人)의 여유와

      멋을 풍기고 있다.

      잠깐 낮잠에 빠졌다가 비소리에 깨어난 시인의 모습이 몽롱한 여름

      정경과 잘 어우러져 있다.

      기구는 발그림자가 시간이 감에 따라 길어지는 것을

      심심전(深深轉)으로, 승구는 연꽃향이 솔솔 풍기는 것을

      속속래(續續來)로 표현하여, 깊어가는 여름 오후를 정중동(靜中動)의

      미감으로 잘 그려내었다.

      전구와 결구에서 오동잎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에

      낮잠을 깬 시인이 비소리를 듣는다.

      여기서는 시인 자신의 모습조차 여름 정경 속의 일부인 듯하다.

      허균의 “개미둑과 같은 비좁은 곳에서도 몸을 잘 움직이니

      또한 좋다(折旋蟻封(꺽을절, 돌선, 개미의, 봉할봉) 亦好: 蟻封은 개미둑)”

      는 평은 평범하고 자그마한 제재를 가지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정경을 만든 시적 능력을 지적한 말이다.

 


     [감상]

 

 

 

      이 시에서는 여름 오후 집안은 텅비어 있고 낮잠을 즐기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후두둑 오동잎을 때리는 소리에 잠을 깬 순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정경 묘사는 음악이라면 상징할 수 있어도 그림으로

      잡기는 쉽지 않다. 그 순간적인 놀라움을 맑은 시어로 잡아내고 있다.

      깊은 사상이나 강한 이념이 전달되는 시는 아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심상을 곱게 드러내는 서정적인 시다. 이런 시적 감흥은 깊은

      사색과 관조를 통해 걸러진 것이다.

      여름날 비내리는 오후에 잠시 단잠이라도 잔 뒤 나뭇잎에 떨어지는

      비소리를 들어보면 더 실감이 날 것이다...

 

 

 


      서거정(徐居正) 1420(세종 2)-1488(성종 19)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사가정(四佳亭).

      권근(權近)의 외손자.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후 집현전박사 등을 거쳐

      1457년(세조 3)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1464년 조선 최초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이 되었다.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文風)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 그는 사가집 四佳集〉등의 저서를 남겼고,

      글씨는 충주의 화산군권근신도비(花山君權近神道碑)에 남아 있다.

 

 

 

 


삼의당 김씨(三宜堂 金氏)

 


                一月兩地照(일월양지조) 달 하나가 두 곳을 비추는데

                二人千里隔(이인천리격) 두 사람은 천 리를 떨어져 있네

                願隨此月影(원수차월영) 원컨대 이 달 그림자 따라

                夜夜照君側(야야조군측) 밤마다 임의 곁을 비추었으면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팔월한가위. 두둥실 떠오른 만월을 바라보면서 고향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고향산천을 그리워합니다. 정든님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달을 바라보면서

               님생각에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가을밤하늘에 걸린 달을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님을 그리는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조선후기 여류시인 삼의당 김씨의

               연시 한 수를 소개합니다.

 

               삼의당 김씨는 남원에서 신랑인 담락당 하립과 한날 한시에 태어나 나이

               18세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시에 빼어난 솜씨를 지니고 있었기에 첫날밤 서로의 마음을 시로

               고백합니다.

               먼저 신랑 담락당이 신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시를 바칩니다.

 

               “삼경에 밝은 달은 봄꽃 같아라/ 꽃이 화려한 때라 달빛이 더욱 곱네/

               달 따르는데 꽃 같은 님이 오니/ 둘도 없는 아름다움이 내 집에 있네.”

               그러자 신부 삼의당이 역시 시를 지어 화답합니다.

                “하늘엔 달빛이 그윽하고 정원에 꽃이 만개했네/

               꽃 그림자 서로 엉키고 달 그림자 더 할 때/

               달 같고 꽃 같은 우리 님과 마주 앉으니/

              세상의 영욕이야 내 알 바 아니네.”

              이렇게 금슬좋은 부부였으니 가을밤에 떠오른 달을 바라보면서 떨어져 있는

              님을 얼마나 그리워 했겠습니까. 그 그리움의 진원지가 된 가을달을 바라보면서

               가족, 연인, 친구 등을 떠올리시는 모든 분들께 삼의당의 시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