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白水 정완영 시조의 작품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鶴처럼 여위느냐. -----------------------------------------<祖國>전문
다음은 작품집 <墨鷺圖> (1972)에 실린 작품이다.
매양 오던 그 산이요 매양 보던 그 절인데도 철따라 따로 보임은 한갓 마음의 탓이랄까 오늘은 외줄기 길을 낙엽마저 묻었고나.
뻐꾸기 너무 울어 싸 절터가 무겁더니 꽃이며 잎이며 다 지고 산 날이 적막해 좋아라 허전한 먹물 장삼을 입고 숲을 거닐자.
오가는 윤회의 길에 승속이 무에 다르랴만 沙門은 대답이 없고 행자는 말 잃었는데 높은 산 외론 마루에 기거하는 흰구름.
인경을 울지 않아도 山岳만한 둘레이고 은혜는 뵙지 않아도 달만큼은 둥그느니 문듯 온 산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노메라. -----------------------------------------<直指寺 韻>전문
다음은 작품집인 동시조집<꽃가지를 흔들듯이> (1978)를 보자.
지지 배배 지지 배배 봄 하늘을 불러 내린다 지지 배배 지지 배배 보리 목을 뽑아 올린다 밭머리 복숭아꽃도 귀가 멍멍 먹는다. ---------------------------<종다리가 울어 싸면>전문
다음은 작품집 <蓮과 바람> (1984) 속의 작품을 보자.
세월도 낙동강 따라 칠백리 길 흘러와서 마지막 바다 가까운 하구에선 지쳤던가 을숙도 갈대밭 베고 질펀하게 누워있네.
그래서 목로주점엔 대낮에도 등을 달고 흔들리는 흰 술 한 잔을 落日앞에 받아 놓면 갈매기 울음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지데.
백발이 갈대처럼 서걱이는 老沙工도 강물만 강이 아니라 하루해도 강이라며 金海벌 막막히 저무는 또 하나의 강을 보네. -----------------------------------------<乙淑島>전문
다음은 작품집 <蘭보다 푸른 돌> (1990) 속에 실린 작품을 보자.
옛날엔 칼보다 더 푸른 난을 내가 심었더니 이제는 깨워도 잠 깊은 너 돌이나 만져 본다 천지간 어여쁜 물소리 새소리를 만져본다. --------------------------------<난보다 푸른 돌>전문
다음은 작품집 <오동잎 그늘에 서서> (1994)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을 언급해 보기로 한다.
옛날 우리 어머님은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야 비로소 하늘 문이 열린다고 하시었다 아득히 너무 푸르러 막막해진 하늘 문이.
왜인지 나는 몰랐다 어린제는 몰랐었다 한 타래 다 풀어 넣어도 닿지 않던 그 唐絲실 어머님 그 깊은 가슴 속 하늘빛을 몰랐었다. ------------------------------------<어머님의 하늘>전문
다음은 동시조집<엄마 목소리> (1998)에 실린 작품을 보자.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목소리가 더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 감고도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엄마 목소리> 전문
다음은 작품집<이승의 등불> (2001)의 작품을 보자.
남현동은 관악산 밑 둥지만한 작은 마을 나는 멧새 다리 종종걸음 이십 년을 내도록 좁쌀만한 시 줍고 살아왔답니다. -------------------------------<南峴洞 詩> 전문
당신이 있을 때는 빈 항아리 같던 사람 가고나니 삼월 하늘 祭器처럼 적막하다 봄은 왜 오지도 않고, 겨울 가지도 않네. --------------------------------<적막 하늘>전문
다음은 제13시조집<내 손녀 然奵에게> (2005)의 작품을 보자.
내 손녀 然奵이가 느닷없이 나를 보고 산 좋고 물 좋은 마을에 할아버지 가서 살란다 그래야 휴가철이면 찾아 갈 집 저도 있단다.
그렇구나, 그리운 네 꿈도 산 너머에 살고 있구나 들 찔레 새순 오르듯 하얀 구름 오르는 날 뻐꾸기 우는 마을에 나도 가서 살고 싶단다. --------------------------------<내 손녀 然奵에게>전문
? 다음은 백수 정완영의 시조집 自序나 수상집 속에서 보여 지는 번득이는 명문장들을 잡아 내 보았다. 그리고 서간문 집, 등 여러 곳에서 산문으로 남겨진 작품들의 면모도 한 번쯤 볼 생각이다.
옛적부터 어느 마을에서나 우물가에 향나무 한 그루쯤은 심어둘 줄 알았었다. 왜 그랬을까? 감나무, 배나무, 호두나무, 앵두나무, 자두나무, 하고많은 과일나무들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향나무를 심었을까? 거기에는 우리 조상님들의 후손을 위한 깊고 먼 배려(配慮)가 숨어있으니 우물가에 향나무를 심어두면 향나무 뿌리가 우물바닥으로 스며들어 우물물이 소독이 되고, 그 물에 향내도 보태주기 때문이었다.---(<다홍치마에 씨 받아라> 自序에서>
나의 노래는 나의 뿔 나의 冠이었다. 이 뿔에 감기는 하늘빛은 몹시도 애달팠다. 앞으로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거추장스럽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 뿔을 고이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내 사랑하는 祖國, 내 사랑하는 兄弟 앞에 벗어놓고 가야겠다. 그것만이 주어진 목숨에의 갚음의 길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採春譜>(1969) 自序에서)
祖國, 그것은 내 久遠의 사랑이었기에 이 가슴의 병이었고 因緣, 이도 내 받고 온 오랏줄이라서 핏줄처럼 당기어 아파오는 것일까? 流水는 울면서 흘러가도 청산에 푸르름을 더하고 搭은 含黙에 서도머리 위 구름을 맑히느니 타고 난 情과 恨이 몇 萬石이 길래 한 生을 거의 다 기울였는데도 解之를 못하는가?---(<墨鷺圖>(1972) 自序에서)
나 이제 서울에 왔다. 가향의 선비 遊京하는 것이 아니라 時流와 世波에 밀려 서울의 착잡(錯雜)에 표류(漂流)해 왔다. 육백 오십만의 망양(茫洋)에 떠서 시시로 沙工을 잃고 빈 배만 남아 自失할 때가 있음은 진실로 나의 孤舟가 方向을 을 모르는 까닭일까? 아니면 水天이 하도 멀고 아득하기 때문일까?---(<失日의 銘>(1974) 自序에서)
가을나무가 제 가지에서 제 잎을 털어낸 연후에 비로소 제 하늘을 확보하고 섰듯이, 나도 무거웠던 想念의 나날들을 다 털어낸 다음 날 내 하늘을 얻어 이고 싶어서이다.---(<꽃가지를 흔들듯이>(1978) 自序에서)
내가 무슨 古山子일까마는 그래도 이 까치집만한 일을 해내는데 宮闕만한 힘을 기울였었다. 진달래 피는 漢拏의 남에서부터, 눈서리 치는 雪岳의 북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素材(寫眞)를 찾아 진실로 2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허물어지려는 몸과 마음을 채찍질하며 步步의 길을 재촉했던 것이다.---(<白水詩選>(1979) 自序에서)
나이가 칠십이면 이웃 나라를 犯境해도 벌주지 않는다는 중국의 故事가 있다. 그만 나이가 되면 이 저승 나들이를 맘 놓고 해도 아무 탈이 없다는 뜻이리라.---(<蘭보다 푸른 돌>(1990) 自序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멀찌감치 물러서서 서로 呼兄呼弟하며 부르고 대답하는 저 北岳과 道峰과 이 冠岳山, 이 산들이 저렇게 의연하고 푸르럴 수 있는 까닭은 아마도 하늘 아래 심고 섰는 억천 년의 긴 침묵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時調는 말로만 쓰는 시가 아니라 말과 말의 行間에 침묵을 더 많이 심어두는 시,---(<오동잎 그늘에 서서>(1994) 自序에서)
나무는 반드시 꽃을 피우고(木之必花), 꽃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花之必實)고 했다. 내 세월의 가을이 깊을 대로 깊었는데도 하늘 아래 따 내릴 열매 없는 나인지라 낙엽이나 긁어모아 불사르거나.---(<茶 한 잔의 갈증>(1992) 自序에서)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가당찮은 신산(辛酸)도 밟아 넘어왔거니와, 분에 넘치는 정의(情誼)도 힘입어 왔다. 돌이켜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온 몸에 반점처럼 돋아나 있는 나는 속절없는 한 마리 얼룩 배기 사슴이다.---(<기러기 葉信>(2004) 自序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