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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2-1강 -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란 무엇인가? 공부방

고목의향기 2010. 9. 14. 15:31

 

제2-1강 -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란 무엇인가? 공부방


이상의 시 <<오감도>>

  <<오감도>>는 ‘오감도(烏瞰圖)’라는 표제 아래 <시제1호>부터 <시제15호>까지 모두 15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형식의 시이다. 각각의 작품은 그 형태와 주제 내용이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오감도’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서로 묶여지고 있다. 이 작품의 신문 연재는 시인으로서의 이상의 문단적 존재를 새롭게 각인시켜 놓았으며, 평단의 관심과 함께 대중적 독자층의 화제의 대상이 된 바 있다. 시인 이상은 이 작품을 통해서 기존의 시법과는 다르게 기호와 도표를 동원하고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진술 방법을 활용하여 시적 의미의 해체와 새로운 의미의 창조를 꿈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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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원문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작품의 표제인 ‘오감도(烏瞰圖)’가 ‘조감도(鳥瞰圖)’의 ‘조(鳥)’라는 한자를 파자(破字)한 것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조감도(bird’s-eye view)는 건물의 모양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대로 그려놓은 것인데, 여기서 ‘조(鳥, 새)’의 한 획을 지워서 ‘오(烏, 가마귀)’ 자로 바꿈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문자놀이(paronomasia)’의 방법은 이상이 그의 시와 소설에서 자주 활용했던 방법으로서 이미 지난해의 창조학교 검지코스에서 그 특성을 설명한 바 있다.

  <<오감도>>는 한국 현대시에서 당시에는 보기 드믄 연작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감도>>는 연작시로서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15편의 작품들이 모두 일련번호를 작품 제목으로 삼아 이어지고 있으며, 시적 대상으로서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특이한 시각(perspective)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상의 시 <<오감도>>는 박태원과 이태준의 주선에 의해 <<조선중앙일보 朝鮮中央日報>>(1934. 7. 24-8. 8)에 연재되었는데, 각 작품별 연재 과정은 다음과 같다.

시제1호(詩第一號)(7. 24)
시제2호(詩第二號)(7. 25)
시제3호(詩第三號)(7. 25)
시제4호(詩第四號)(7. 28)
시제5호(詩第五號)(7. 28)
시제6호(詩第六號)(7. 31)
시제7호(詩第七號)(8. 1)
시제8호(詩第八號)(8. 2)
시제9호(詩第九號) 해부(解剖) (8. 3)
시제10호(詩第十號) 총구(銃口) (8. 3)
시제11호(詩第十一號) 나비 (8. 4)
시제12호(詩第十二號)(8. 4)
시제13호(詩第十三號)(8. 7)
시제14호(詩第十四號)(8. 7)
시제15호(詩第十五號)(8. 8)

소설가 박태원이 밝힌 <<오감도>> 발표 경위

  내가 이상(李箱)을 안 것은 그가 아직 다료(茶寮) ‘제비’를 경영하고 있었을 때다. 나는 누구한테선가 그가 고공 건축과(高工建築科) 출신이란 말을 들었다. 나는 상식적인 의자나 탁자에 비하여 그 높이가 절반 밖에는 안 되는 기형적인 의자에 앉아 점(店) 안을 둘러보며 그를 괴팍한 사나이다 하였다.

   ‘제비’ 헤멀쑥한 벽에는 10호(號) 인물형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나는 누구에겐가 그것이 그 집 주인의 자화상임을 배우고 다시한번 쳐다 보았다. 황색 계통의 색채는 지나치게 남용되어 전 화면은 오직 누―런 것이 몹시 음울하였다. 나는 그를 ‘얼치기 화가로군’하였다.

  다음에 도 누구한테선가 그가 시인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나 무슨 소린지 한마디 알 수 없지…….”

  나는 그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시가 보고 싶었다. 이상은 방으로 들어가 건축잡지를 두어 권 들고 나와 몇 수의 시를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슈르-리얼리즘’에 흥미를 갖고 있지는 않았으나 그의 <운동(運動)>1편은 그 자리에서 구미가 당겼다.

  지금 그 첫 두 머리 한 토막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나 그것은(1층위에2층위에3층위에옥상정원에를올라가서남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북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길래 다시옥상정원아래3층아래2층아래1층으로내려와……)로 시작되는 시였다.

  나는 그와 몇 번을 거듭 만나는 사이 차차 그의 재주와 교양에 경의를 표하게 되고 그의 독특한 화술과 표정과 제스처는 내게 적지 않은 기쁨을 주었다.

  어느 날 나는 이상과 당시《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있던 상허(尙虛)와 더불어 자리를 함께하여 그의 시를《중앙일보》지상에 발표할 것을 의논하였다.

  일반 신문독자가 그 난해한 시를 능히 용납할 것인지 그것은 처음부터 우려할 문제였으나 우리는 이미 그 전에 그러한 예술을 가졌어야만 옳았을 것이다.

  그의〈오감도(烏瞰圖)〉는 나의〈소설가 구보(仇甫)씨의 일일(一日)〉《중앙일보》지상에 발표되었다. 나의 소설의 삽화도 ‘하융(河戎)’이란 이름 아래 이상의 붓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예기(豫期)하였던 바와 같이 〈오감도〉의 평판은 좋지 못하였다. 나의 소설도 일반 대중에게는 난해하다는 비난을 받았던 것이나 그의 시에 대한 세평(世評)은 결코 그러한 정도의 것이 아니다. 신문사에는 매일같이 투서가 들어왔다. 그들은〈오감도〉를 정신이상자의 잠꼬대라 하고 그것을 게재하는 신문사를 욕하였다. 그러나 일반 독자뿐이 아니다. 비난은 오히려 사내(社內)에서도 커서 그것을 물리치고 감연(敢然)히 나가려는 상허의 태도가 내게는 퍽이나 민망스러웠다. 원래 약 1개월을 두고 연재할 예정이었으나 그러한 까닭으로 하여 이상은 나와 상의한 뒤 오직 십수 편을 발표하였을 뿐으로 단념하여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 이상이 느낀 울분은 제법 큰 것이어서 미발표대로 남아 있는〈오감도 작자의 말〉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왜 미쳤다고들 그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 바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보아야 아니 하느냐. 열아문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2천 점에서 30점을 고르는 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어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 달고 그만두니 서운하다. 깜빡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지만 이태준(李泰俊), 박태원(朴泰遠) 두 형이 끔찍이도 편을 들어준 데는 절한다. 철(鐵)― 이것은 내 새 길의 암시요 앞으로 제 아무에게도 굴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물론 다시는 무슨 다른 방도가 있을 것이고 우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딴은 정신병이나 고치겠다.


  그러나 〈오감도〉를 발표하였던 것은 그로서 아주 실패는 아니었다. 그는 일반 대중의 비난은 받은 반면에 그것으로 하여 물론 소수이기는 하여도 저기 예술의 열렬한 팬을 이때에 이미 확실히 획득하였다 할 수 있다. (박태원, 이상의 편모 片貌, 《조광》 1937. 6)


이상의 시 창작과 <<오감도>>

  상의 시 창작은 국문 글쓰기와 일본어 글쓰기라는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상은 1930년 잡지 <<조선(朝鮮)>>에 장편소설 「12월 12일」을 국문으로 연재한다. 이 작품은 이상 소설의 문제의식과 서사성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는 출발점에 해당한다. 1931년에는 <<조선과 건축(朝鮮と建築)>>에 일본어 시 「이상한 가역반응(異常ナ可逆反應)」 등을 비롯하여 연작시의 형태로 「조감도」와 「삼차각설계도」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학적 글쓰기 활동을 전개한다. 1932년 잡지 <<조선(朝鮮)>>에 발표한 국문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 「휴업과 사정」 등은 서사적 구성과 기법의 면에서 독특한 개성을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과 건축(朝鮮と建築)>>에 일본어 연작시 「건축무한육면각체」 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그가 지니고 있는 시적 상상력의 진폭을 보여준다. 이상이 잡지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일본어 시는 모두 28편이다. 이 작품들은 당대의 문단과 아무 교류가 없는 비문단권의 매체를 통해 일본어로 발표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들은 이상이 정식으로 문단 활동을 하기 전에 이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시적 상상력과 기법적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초기 단계의 문학적 글쓰기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양식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른바 이중어적(二重語的) 글쓰기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상은 폐결핵으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되자 1933년 조선총독부 기수직을 사직하고 봄에 황해도 배천(白川)온천에서 요양하였다. 그곳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을 서울로 불러올려 종로에 다방 <제비>를 개업하면서 동거한다. 그리고 다방 <제비>에 드나들던 소설가 박태원, 이태준, 시인 정지용, 김기림 등과 교유하면서 이들이 주축이 되어 1933년 8월에 결성한 문학단체 <구인회(九人會)>에도 참여하게 된다. 정지용의 주선으로 잡지 <<가톨닉청년(靑年)>>에 발표한 국문시 「꽃나무」, 「이런 시」 등이 이상에게는 1930년대 한국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하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시 <<오감도>>의 연재를 통해 그 존재를 분명하게 각인 시킨 셈이다.

<<오감도>>의 이해를 위한 각서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이 공상의 명제는 모든 인간에게 하나의 꿈이었다. 이 꿈은 비행기라는 기계의 힘으로 실현되고 있다. 시인 이상의 경우도 이같은 꿈을 꿈꾼다. 그러나 이상의 꿈은 하늘을 날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늘에 높이 떠 있는 ‘까마귀’처럼 지상의 인간을 내려다 볼 수 있기를 꿈꾼다. 높이 나는 공중의 비행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땅을 내려다볼 수 있는 시선과 각도를 꿈꾸는 것이다. 이상의 시 <<오감도>>는 바로 이 꿈의 시적 형상에 해당한다. 이 작품이 지금도 여전히 대표적인 난해시로 손꼽히고 있지만, 인간의 삶의 세계와 사물을 보는 시각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인간은 언제나 땅위에 발을 디디고 살아간다. 땅위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높은 산과 키가 큰 나무의 꼭대기를 올려다본다.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시선과 각도에 들어오는 사물만을 감지하기 때문에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만을 사물의 실재적 양상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늘을 나는 새의 눈을 가장하여 세상을 내려다 본 풍경을 가상해 본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발상이다. 이러한 인식의 방법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예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조감도(鳥瞰圖)’의 의미는 인간이 새가 되는 것을 전제한다. 물론 새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다니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새의 시선과 각도로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시각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모든 사물이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새의 눈(또는 시선)에 집중되어 있음을 뜻한다. 새의 위치에서 가질 수 있는 시선의 높이와 그 각도로 인하여 지상의 모든 사물의 새로운 형태와 그 지형도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 위치와 거리가 감지된다. 그러므로 조감도의 시선과 각도를 가진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지를 전체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시선과 각도를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물의 세계를 그보다 높은 시각에서 장악할 수 있게 됨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상의 <<오감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발견이다. 그는 본다는 것이 단순히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의 외적 형상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을 관찰하는 과정과 함께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관찰자로서의 주체까지도 포함하는 여러 개의 장(場)을 함께 파악하는 일이다. 이상은 사물에 대한 물질적 감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사물의 전체적인 형태나 중량감 윤곽, 색채와 그 속성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특이한 시선과 각도를 찾아낸다. 이상은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둘러싼 문화적 조건의 변화에 일찍 눈을 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을 두면서 근대 회화의 기본적 원리를 터득하였고,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근대적 기술 문명을 주도해온 물리학과 기하학 등에 관한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된다. 그가 경성고등공업학교의 건축과에서 수학하면서 익힌 모든 지식은 20세기 초반의 기계문명시대를 결정한 여러 가지 기초적인 이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은 그의 문학에서 광선, 사물의 역동성, 구조 역학, 기하학 등 기계시대를 이끌어오고 있는 특징적인 이미지들을 작품의 주제로 채택하고 이를 작품을 통해 새롭게 형상화하고자 한다.

  이상은 시 <<오감도>>를 통하여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기술 문명의 세계를 놓고, 그것의 정체를 포착하면서 동시에 주체의 의식의 변화까지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그림을 상상한다. 이상의 <<오감도>>는 그러므로 1920년대까지 한국에서 유행하던 서정시의 시적 진술법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사물에 대한 보다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접근법을 채택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주체의 시각을 새롭게 변형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의 <<오감도>>는 한국문학에서 분명 하나의 충격이다. 이러한 충격은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양식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되어 외관의 무의미성을 강조하면서 상상력의 하부 구조를 열어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주체의 절대적인 존재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문학에서는 조각이나 부분이 전체를 대신하며, 한정되어 있는 전체보다는 단절되어 있는 부분과 부러진 조각에서 어떤 의미를 느낀다. 구속이 없는 자유, 자유로운 감각, 질서에 대한 충동의 우위, 상상력의 해방, 이런 것들이 오늘날까지도 이상의 시에 관심을 지니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물론 이상의 <<오감도>>는 어떤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하였고, 현상과 본질의 대립, 부분과 전체의 부조화를 문제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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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희망봉
글쓴이 : 희망봉(김종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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